18세기 스코틀랜드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무신론자로 낙인찍히면서도 정작 본인은 그 정체성을 거부했던 독특한 사상가입니다. 그는 이성으로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는 철저한 경험주의를 통해 인과율과 물리법칙을 의심했지만, 동시에 신의 존재를 단정적으로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흄이 과연 무신론자인지 불가지론자인지, 그의 경험주의가 어떻게 종교와 맞닿아 있는지, 그리고 그가 계시종교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흄은 불가지론자인가 무신론자인가
흄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은 그가 신의 존재를 부정했는가입니다. 일반적으로 무신론자들은 흄을 자신들의 영웅으로 여깁니다. 흄이 데카르트의 신증명을 반박했고,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에서 "기적은 자연법칙을 위반하는 것"이며 "기적은 입증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흄 본인은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자처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무신론을 지나치게 독단적인 입장으로 보았습니다.
흄의 입장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돌바크의 만찬' 일화입니다. 파리 체류 중 열렬한 무신론자인 돌바크 남작의 저택 만찬에 참석했을 때, 18명 중 15명이 무신론자였고 3명은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흔은 "자신은 무신론자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고, 남작은 "여기 무신론자 15명을 한꺼번에 만나게 해드렸으니 잘됐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일화는 흄이 당시 무신론자들과도 거리를 두었음을 보여줍니다.
흄은 두 가지 핵심 질문을 던졌습니다. 첫째, "무한히 선하시고, 지혜롭고, 권능이 있고, 완전한 신을 추론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이 세상에 진짜 있는가?" 이에 대해 그는 "명백히 신은 존재한다"고 답했습니다. 둘째, "신의 본성에 대하여 어떤 이성적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지?" 이에 대해서는 "결정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이는 흄이 신의 존재 자체는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이성으로 신의 본성을 파악할 수 없다는 형이상학적 불가지론의 입장을 취했음을 보여줍니다.
흄은 에딘버러 대학과 글래스고우 대학 교수직에 지원했을 때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거부당했지만, 정작 프랑스 파리에서는 믿는다고 조롱을 당했습니다. 이는 그의 입장이 당시 양 진영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불가지론자에게는 신의 존재가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있지만, 무신론자는 신을 부정합니다. 흄은 전자에 가까웠습니다.
| 입장 | 신의 존재 | 신의 본성 | 흄의 평가 |
|---|---|---|---|
| 유신론 | 확실히 존재 | 알 수 있음 | 독단적 |
| 무신론 | 존재하지 않음 | 알 필요 없음 | 지나치게 독단적 |
| 불가지론 | 알 수 없음 | 결정할 수 없음 | 흄의 입장 |
경험주의로 본 이성의 한계와 진화사상
흄의 철학적 프로젝트는 명확했습니다. "모든 탐구와 논쟁의 원대한 프로젝트는 바로 이성을 통해 이성을 허무는 것"이라고 그는 1748년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에서 밝혔습니다. 데카르트가 '방법론적 회의'를 통해 이성을 주시했다면, 흄은 이성조차 확실하지 않으며 오직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만 지식을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더 철저한 회의론을 전개했습니다.
데카르트는 인간에게 본유관념(innate idea)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신 관념, 옳고 그름의 도덕적 관념, 수학적 관념이 그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신의 존재와 신이 인간을 속이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로크, 버클리, 흄과 같은 경험주의자들은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을 부인했습니다. 흄에 따르면 자아란 '관념의 다발'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닙니다.
흄의 경험주의는 당시 영국을 지배하던 신의 창조설에 반대하는 진화사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는 도덕이 신으로부터 부여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념(강한 감정)에서 생긴다고 보았습니다. 좋은 기분을 주는 것은 진화되고, 나쁜 기분을 주는 것은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흄은 시장경제가 도덕을 더욱 발전시킨다고 주장했으며, 사유재산제도가 사회적 진화에서 생겨났다고 보았습니다. 사람이 타인의 재산을 탈취하지 않고 물물교환을 했더니 두 사람 다 편해지는 경험을 했기에, 진화적으로 사유재산을 존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흄은 신의 설계자 이론(the Design Argument)을 부정했습니다. 이신론(Deism)자들은 이 세상이 신의 지적 설계의 산물이라고 주장했지만, 흄은 창조주(Creator)를 시계제작자(Watchmaker)에 비유하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보았습니다. 시계제작자는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창조주 신은 우리의 경험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상과 가설에 의지해서 신의 존재를 상정한다고 흄은 보았습니다.
흄의 이러한 진화적 사고는 훗날 생물학자 찰스 다윈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그를 '철학자의 철학자'이자 과학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자연주의적 방법론을 철학에 도입했기 때문입니다.
계시종교와 기적에 대한 비판의 진의
흄의 기적 비판은 많은 오해를 낳았습니다.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 10장 '기적에 대하여'에서 그는 "기적은 자연법칙을 위반한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증거보다 기적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거가 훨씬 더 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적의 불가능성을 증명한 것이 아닙니다. 기적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증거보다 약하다는 의미이지, 특정한 일이 일어날 수 없다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흄이 진정으로 경계한 것은 미신과 광신으로 인한 사회 혼란이었습니다. "광신은 인간 사회에 가장 잔혹한 혼돈을 초래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다른 경험주의자들과 같이, 흄도 종교의 불관용 문제를 지적하며 관용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종교를 진실이라고 생각할 증거가 없을 뿐이지 별다른 부정적 평가를 내리지 않았으며, 종교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주장할 방법도 없다고 보았습니다.
흄이 사후에 출간해달라고 당부한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1779)는 그의 종교관을 이해하는 중요한 텍스트입니다. 이 책에서 계시종교, 자연종교, 온건한 회의주의를 각각 데미안(Demea), 클레안테스(Cleanthes), 필로(Philo)라는 인물이 대변합니다. 많은 학자들이 필로를 흄의 분신으로 보지만, 이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해석입니다. 세 인물이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대화록 구조상, 어느 한 인물이 흄의 최종 입장을 대변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점은 필로가 결말에서 이렇게 말한다는 것입니다. "철학적 회의론이야말로 진정한 기독교에 이르는 유일하게 적절한 길이다. 이는 이성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켜서 우리를 계시(revelation)로 향하도록 몰아갈 것이며, 우리는 오직 계시를 통해서만 우리는 신을 바로 예배하게 된다." 이 구절을 근거로 일각에서는 흄의 회의주의가 오히려 바른 종교를 세우고 있다고 해석하지만, 이는 과도한 해석일 수 있습니다.
흄이 이성의 한계를 드러낸 것은 맞지만, 그 귀결이 종교적 계시의 수용이어야 한다는 논리는 흄 본인의 철학 정신과 충돌하는 면이 있습니다. 흄은 경험과 관찰로 검증되지 않는 것에 대해 단정을 내리지 않는 태도를 일관했는데, 계시를 수용하라는 결론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독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훗날 비트겐슈타인이 <논리 철학 논고>에서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라"고 결론 내린 것처럼, 흄 역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는 '알지 못한다'고 인정하는 불가지론의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흄은 무신론자보다도, 신의 속성을 다 아는 것처럼 만용을 부림으로써 신의 신비와 위대함을 훼손하는 것을 더욱 불경하다고 했습니다. 불경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신을 인간과 유사하게 보는 신인동형론'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흄의 자연주의 방법론은 종교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독단적 교리와 이성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종교적 관용의 정신을 통해 건강한 사회를 추구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흄의 비판 대상 | 비판 내용 | 진정한 목적 |
|---|---|---|
| 기적 | 자연법칙 위반, 입증 불가 | 미신과 광신 경계 |
| 신의 설계자 이론 | 경험 밖의 존재 비유 부적절 | 이신론의 독단 비판 |
| 신인동형론 | 신의 신비 훼손 | 종교적 만용 경계 |
데이비드 흄은 무신론자도 유신론자도 아닌 철저한 불가지론자였습니다. 그는 이성으로 이성의 한계를 드러냈지만, 그 결과가 신의 부재를 입증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에 대해 독단을 부리지 말 것을 당부했습니다. 흄의 회의주의를 계시종교로의 안내로 해석하는 시도는 흥미롭지만, 그것이 흄의 최종 입장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논리적 비약이 있습니다. 흄은 관용과 경험, 그리고 겸손한 지적 태도를 강조한 철학자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출처]
데이비드 흄의 철학적 입장에 관한 분석: https://blog.naver.com/yoondy2000/222595991735